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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화순 버스투어

깊은역사와 수려한 자연경관, 감동이 있는 화순여행!

코스안내

버스투어 동부권 투어코스안내

설렘화순 버스투어 동부권 (소요시간 : 7시간)

09:00 ~ 10:10 버스탑승
이용대체육관 앞

13:25 ~ 14:05 임대정원림
(명승 제89호)

14:25 ~ 15:05 연둔숲정이

15:10 ~ 15:50 김삿갓 문학동산

12:20 ~ 13:20 점심식사

10:10 ~ 10:30 환승
(적벽초소)

09:30 ~ 10:10 화순적벽
(망향정,망미정)

12:45 ~ 13:05 조광조 유배지

16:30 ~ 17:00 이용대체육관 앞
투어종료

코스별설명

  • 임대정원림

    1코스 명승지 관람 - 임대정원림

    1985년 2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된 후 2012년 4월 10일 명승 제8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620㎡이다. 정원은 1500년대 말에 남언기(南彦紀)가 조성한 고반원에서 유래한다. 남언기는 이곳에 초려를 짓고 일생을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그후 민주현이 귀향하여 고반원의 옛터에 3칸 팔작지붕의 정자를 건립하고 임대정이라 불렀다. 1992년에 정자와 연지석축을, 1993년에 연지석축을 보수하였으며, 1994∼1995년 보호책을 설치하였다.
    평탄한 마당에 정자가 있고 작은 방지가 있다. 방지 뒤편에는 대나무 숲이 있으며, 정자 앞으로 사평천과 광활한 평야가 보인다. 또 절벽 아래의 계단을 내려가면 위와 아래에 2개의 연못이 있다. 윗쪽의 연못은 정자로 가는 길 옆에 길게 늘어진 형태로 있고 가운데 2개의 섬이 있다. 아랫쪽 연못은 중도가 하나인데 윗쪽의 연못에 비해 좀 큰 편이며, 주위에 배롱나무가 있다. 두 연못 사이는 수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고 서북향이다.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1922년에 기와로 중건하였다. 방지는 사방이 6.5m이고 방지 중도에는 세심이라고 새긴 돌이 있고, 주위는 오죽이 감싸고 있다. 방지의 물가에는 6면석이 있고 동쪽에는 피향지, 서쪽에는 읍청당, 앞쪽에는 기임석 임술춘이라고 새겨져 있다.
    임대정 원림은 지형조건 때문에 형성된, 위와 아래 두 연못이 전통적인 연못의 형태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지만 골격은 전통적인 원림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자의 이름은 민주현이 송(宋)의 주돈이의 시구에서 따왔다고 또는 동쪽에 있는 봉정산과 사평천이 만나는 곳에 정자가 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를 읊었고, 충효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활용되었다

  • 연둔 숲정이

    2코스 마음 물들이는 초록 - 연둔 숲정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 둔동마을에 있는 숲정이(마을 근처에 있는 숲)로, 2006년 12월 2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237호로 지정되었다. 보호면적은 6,437㎡이다. 동복천(川)을 따라 약 700m에 걸쳐 남북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숲은 왕버들나무·느티나무·서어나무·검팽나무·상수리나무·뽕나무 등 230여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연둔리 숲정이는 1500년경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홍수 등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자 조성한 인공림이다. 동복천의 수중보 아래에 있는 왕버들나무는 자연적으로 자란 노거수로,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자생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흉고(가슴둘레 높이) 직경이 5~20cm에 이르는 나무는 72그루(31.7%)로 수령 50년 전후일 것으로 보이며, 흉고 직경이 61~80cm인 나무는 45그루(19.8%)로 수령 100~200년으로 보인다. 또한 흉고 직경 100cm 이상 된 수령 400~500년의 느티나무·서어나무·검팽나무·왕버들나무도 많다.
    큰 나무 사이 사이에 수양버들·이태리포플러·뽕나무가 자리 잡고 있고, 숲의 아래쪽에는 마삭줄·왕쥐똥나무·거북꼬리풀·조릿대 등이 서식한다. 마을숲의 나무는 썩은 나무라도 마음대로 베어낼 수 없도록 한 엄격한 규약에 따라 숲이 보전될 수 있었다 하며 최근에도 숲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나무를 심고 있다

  • 김삿갓동산

    3코스 방랑시인 김삿갓의 종영지 - 김삿갓 문학동산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길 77(구암리 647)에 있는 문학공원으로,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金炳淵)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그가 생을 마칠 당시 기거하였던 장소와 그 주변을 공원화 하였으며, 공원에는 삿갓정이라는 정자와 김삿갓 동상, 40여개가 넘는 김삿갓 시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 거북목적벽

    4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거북섬

    화순적벽 거북섬은 투어버스를 타고 관리사무소에서 조금 가다 보면 우측에서 볼 수 있는데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어 거북섬이라 불린다고 한다. 마치 동복댐 이서적벽을 향해 헤엄쳐 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 보산적벽

    4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보산적벽

    노루목적벽 앞에서 망향정을 품고 있는 작은 적벽이 보산적벽이다. 장항적벽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파에 깎이고 파인 모양새가 신비롭다.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상시개방으로 쉽게볼수 있지만,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볼수 있다.

  • 노루목적벽

    4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노루목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이서면의 노루목적벽을 꼽는다. 수많은 시인들이 영감을 얻어갈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였다. 산의 형세가 노루(獐)의 목을 닮았다고 '노루목적벽'으로 불린다고한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아무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반면,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볼수 있다.

  • 망미정

    4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망미정

    망미정(望美亭)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에 있는 정자로서, 적벽을 바라다보며 서 있다. 정자의 주인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丁之寯, 1592∼1663)으로 당시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개한 나머지 고향에 내려와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하며 생을 마감했다. 정지준은 망미정에서 학문에 전념하다가 계묘년(1663) 12월 숨을 거뒀다.
    정자는 1646년(인조 24) 적벽 강가에 지어져 전해 내려오다, 동복 댐이 들어서면서 1983년 현 위치로 옮겨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 망향정

    4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망향정

    1983년 동복댐의 완성으로 적벽의 절반은 물에 잠기게 되고 그 주위에 살던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게 된다. 적벽의 맞은편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설움이 담긴 정자, 망향정이 있다. 망향정은 장두석 선생님이 주도하에 전라도의 윤창병 목수가 지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고향을 잃고, 선산에 가지 못하는 수몰민들이 매년 모여서 시제를 모시고, 천제를 지낸다고 한다.
    망향정 주변에는 적벽동천과 적벽팔경이 새겨진 비석, 수몰된 15개 마을의 비석을 세운 망향비와 망배단, 천제단 등이 남아 있다.

  • 조광조유배지

    5코스 정암 조광조선생을 기리는 곳 - 조광조유배지

    작은 비각과 전각, 복원된 초가집이 전부인 유적지이지만 조선 중기 이상적인 개혁정치를 꿈꾸었던 젊은 정치인의 노력과 37세 짧은 생의 마지막을 담고 있는 뜻 깊은 땅이다. 조선 중종대의 개혁공신 정암 조광조의 유배지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붉은빛 글씨가 선명한 비석은 ‘정암 조선생 적려 유허 추모비’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적려’는 귀양을 일컫는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을 도와 유교 정치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과감한 개혁 정치를 실시한 조광조는 도교 사당인 소격서의 철폐, 향약 실시, 토비와 노비 하사의 특권을 인정받았던 훈구공신의 명부인 훈적 삭제 등 왕도정치의 이상 세계 구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약 2년여 동안의 무리한 급진정책은 기존 세력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 그의 강력한 정치적 후견인이 되어야 할 중종이 중국의 요, 순 임금에 버금가는 성군을 만들려는 조광조의 열정을 부담스러워하였다. 결국 역성 혁명을 꾀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개혁 세력 모두 축출된 당시의 사건은 기묘사화로 불린다. 화순으로의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아 그 생을 마감한 조광조의 억울함을 달래는 비석과 사당은 우암 송시열의 비문을 새긴 비석과 사당이 남아 있어 그 시대의 이야기를 사람들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