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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화순 버스투어

깊은역사와 수려한 자연경관, 감동이 있는 화순여행!

코스안내

버스투어 서부권 투어코스안내

설렘화순 버스투어 서부권 (소요시간 : 7시간 30분)

09:30 ~ 10:10 버스탑승
이용대체육관 앞

10:10 ~ 11:20 운주사

11:50 ~ 12:40 점심식사

13:10 ~ 13:30 로컬푸드 직매장
쇼핑

13:35 ~ 14:35 고인돌 유적지

15:05 ~ 15:25 환승
(적벽초소)

15:25 ~ 16:15 화순적벽
(망향정,망미정)

16:15 ~ 16:30 환승
(적벽초소)

16:30 ~ 17:00 이용대체육관 앞
투어종료

코스별설명

  • 화순 운주사

    1코스 구름도 쉬어가는 곳 - 화순 운주사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연화탑과 굴미륵석불,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臥佛) 등이 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파악한 도선이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고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부부와불(화순 운주사 와형 석조 여래불)은 천불천탑 중 마지막 불상으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1,000년 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한다.

  • 고인돌 유적지

    3코스 거석문화의 진수 - 고인돌 유적지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의 10km 지역에 계곡을 따라 자리 잡고 있어요. 전체 면적이 강화도는 물론 고창 유적지보다 넓답니다. 효산리에 277기, 대신리에 319기로 총 596기의 고인돌이 있지요.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매우 다양한 지형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일부 고인돌은 벼농사를 짓는 논 한가운데나 논 주변에 조성되어 있고, 대부분은 해발 65~125m 사이의 산기슭이나 거대한 바위산, 산과 산을 이어주는 고개 등에 조성되어 있어요. 화순 고인돌이 모여 있는 산은 숲이 울창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답니다. 화순 고인돌은 바둑판식(기반식)이 대부분이고 개석식 고인돌도 발견되었어요. 매우 커다란 고인돌이 많은 것도 화순 고인돌의 특징이랍니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 돌들이 많은 이유는 주변에 거대한 채석장이 4곳이나 있기 때문이지요.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어떤 곳보다 고인돌을 만들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랍니다. 277기의 고인돌이 있는 효산리에는 1124개의 석재가 사방에 흩어져 있으며, 319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대신리에는 자그마치 3543개의 석재가 고인돌 유적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채석장은 고인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잘 보여 주는 유적지라고 할 수 있어요. 거대한 채석장에는 돌의 결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돌을 채취한 흔적이 여러 곳 남아 있어요. 그리고 암벽 주변에는 암벽에 남은 흔적과 비슷한 크기로 떼어 낸 돌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습니다.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지 곳곳에서도 비슷하게 생긴 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답니다.

  • 거북목적벽

    5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거북섬

    화순적벽 거북섬은 투어버스를 타고 관리사무소에서 조금 가다 보면 우측에서 볼 수 있는데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어 거북섬이라 불린다고 한다. 마치 동복댐 이서적벽을 향해 헤엄쳐 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 보산적벽

    5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보산적벽

    노루목적벽 앞에서 망향정을 품고 있는 작은 적벽이 보산적벽이다. 장항적벽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파에 깎이고 파인 모양새가 신비롭다.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상시개방으로 쉽게볼수 있지만,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볼수 있다.

  • 노루목적벽

    5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노루목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최고 절경으로 이서면의 노루목적벽을 꼽는다. 수많은 시인들이 영감을 얻어갈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였다. 산의 형세가 노루(獐)의 목을 닮았다고 '노루목적벽'으로 불린다고한다.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아무때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반면,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적벽투어를 통해서만 볼수 있다.

  • 망미정

    5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망미정

    망미정(望美亭)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에 있는 정자로서, 적벽을 바라다보며 서 있다. 정자의 주인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丁之寯, 1592∼1663)으로 당시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개한 나머지 고향에 내려와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하며 생을 마감했다. 정지준은 망미정에서 학문에 전념하다가 계묘년(1663) 12월 숨을 거뒀다.
    정자는 1646년(인조 24) 적벽 강가에 지어져 전해 내려오다, 동복 댐이 들어서면서 1983년 현 위치로 옮겨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 망향정

    5코스 천하제일경 화순적벽 - 망향정

    1983년 동복댐의 완성으로 적벽의 절반은 물에 잠기게 되고 그 주위에 살던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게 된다. 적벽의 맞은편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설움이 담긴 정자, 망향정이 있다. 망향정은 장두석 선생님이 주도하에 전라도의 윤창병 목수가 지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고향을 잃고, 선산에 가지 못하는 수몰민들이 매년 모여서 시제를 모시고, 천제를 지낸다고 한다.
    망향정 주변에는 적벽동천과 적벽팔경이 새겨진 비석, 수몰된 15개 마을의 비석을 세운 망향비와 망배단, 천제단 등이 남아 있다.